아이에게 아무 영향 받지 않는 엄마는 없다. 모든 불평에는 죄책감이 따른다. 엄마라고 아이와의 모든 순간이 행복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육아가 늘 즐거울 수는 없다. 수많은 엄마가 육아에 지치고 그때마다 자책한다. 엄마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비난하지 않아도 스스로 엄마로서의 무능감을 떨치지 못할 것이다. 아이가 자신의 이런 모습을 알게 될 날이 오는 것에 마음 무거울 수 있다.

불평할 거면 아이를 왜 만났냐는 말은 회사에 지원한 건 너면서 왜 힘들어하냐고 절대 힘들어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업무가 만족스러운 날이 있고 아닌 날도 있듯이 육아도 마찬가지다. 아이와의 시간이 소중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끝까지 함께할 것이고 아이의 존재와 지금에 감사해도 정말 힘든 날이 있고 무너질 때도 있는 것이다.

엄마가 된 후의 생활은 당황스러운 게 사실이다. 자율성은 보장되지 않고 행동에 많은 제약이 생긴다. 즉흥적인 결정이 불가능해지고 일상의 감정 소모도 심해진다. 너무 힘든 날엔 혼자일 때의 잔잔한 일상이 그립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다시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너무 지치고 의지가 약해지면 편하고 효과적인 육아법을 찾기도 한다. 처음 의지와 다르게 육아 기준을 점점 낮추게 될 때는 스스로 더욱 실망스럽다. 부모로서 잘하고 있는지 불안한 마음에 행동의 이유를 먼저 설명하며 자기방어적으로 굴기도 한다. 아이가 커도 죄책감의 형태만 달라지는 것이지 절대 털어버리지 못한다. 늘 충분하지 않은 것 같은 압박감을 느낀다.

상황을 모른 채 누군가의 육아법을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부모와 아이는 저마다 성향이 다르며 가족의 형태도 다양하다. 절대적으로 옳은 방법이란 없다. 역할에 갇히지 않고 가족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가면 되는 것이다. 다른 육아 기준과 비교하며 부족하다고 느낄 필요도 없다.

어딜 가나 평가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고 도를 넘는 조언이나 개입은 가볍게 넘길 수도 있어야 한다. 서로 다치지 않고 공존하는 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약속은 지켜져야 할 것이고 가족을 위한 더 나은 방법을 찾는 것에 한쪽이 무심해서도 안 될 것이다.

참고

1) <와이프가 임신한 것을 별로 기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네이트판, (링크)

2) 책 <엄마 같지 않은 엄마>

3) 이미지 출처: 밥이 되어라, MBC (링크)

Written by LA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