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델 정혁은 원래 개그맨을 꿈꿨다. 어린 시절 한부모 가정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힘들게 생활했던 그는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해 외로운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현실을 직시하게 되면서 돈이 없어도 가능성이 있는 개그맨을 꿈꾸게 됐고 개그 코너를 보면서 힘든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당시 사고를 많이 치던 형을 보면서 자신만은 그러지 않겠다고 부단히 노력해왔다고 한다. 그렇게 억압해온 감정이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날도 있었다. 고등학생 때 아버지께 집에 돈이 없으니 대학을 안 가고 개그맨이 되겠다고 전한 날이 그랬다. 그날 아버지는 가족이 잠든 시간에 단칸방을 나가 흐느껴 울었다. 그 어떤 것에도 상처받지 않고 강하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의 울음이 들려왔다. 그날 아버지의 눈물은 아직도 아들의 마음에 깊게 남아있다.
정혁은 용기를 내 아버지께 사랑한다는 말을 전했다. 아빠한테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했고 어른이 되고 나니 많이 후회된다고. 미안하고 앞으로 더 잘하겠다고 전했다. 너무나 죄송한 마음에 말보다 눈물이 앞서는 아들의 모습이었다.
부모님의 삶이 함께 떠올라 슬퍼져 왔다. 자식이 부모의 보이지 않는 시간을 헤아리기 시작하는 건 자신도 어른의 삶을 살아가게 되면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 가늠은 언제가 되어도 충분치 못하다. 부모는 지난날의 가난이 미안하고 자식은 억눌러온 원망이 죄송하다.
자식이 집안 사정을 인지하기 시작하면 일찍 철이 들기도 한다. 여유 없는 형편이 서럽고 어리광조차 부리지 못하는 아이가 되기도 한다. 하고 싶은 것 대신 못 하는 이유를 먼저 받아들이고 해달라는 말 대신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한다. 참아온 서러움은 울어야 할 이유를 만난 순간 한꺼번에 몰려와 터지기도 한다.
어느덧 자란 자식은 지나온 시간 동안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부모가 아닌 나라며 이기적인 생각을 하기도 한다. 목표를 이루어도 가족을 떠올리며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돌이라는 돌은 스스로 다 주워와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서 무겁고 힘들다고 서러워한다. 가족 얘기가 나올 때면 침묵으로 못난 마음을 숨기기도 한다. 뭐가 그렇게 사정이 많고 뭐가 그렇게 서러웠을까.
진짜 여유가 없었던 것은 돈이 아닌 감정과 마음의 영역이다. 아는 것이 많아지고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커지면 부모를 살필 자리는 더욱 좁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부족하다고 여겼던 지난 삶에도 부모의 사랑은 존재했고 무엇이 됐든 부모의 노동은 자식을 먹여 살렸다. 세상의 기준에 못 미쳤다고 해도 내 존재로 내가 긍정하면 되는 것이다. 모진 말은 오래 남고 후회는 항상 뒤늦게 온다. 자식은 늘 부모보다 늦다. 전하지 못한 마음이 있다면 너무 많이 늦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참고
1) <아버지에게 대학 포기 각서를 쓴 정혁>, 강호동의 밥심 (링크)
2) <고등학생 때 후회했던 행동 얘기하며 오열하는 모델 정혁…jpg>, 더쿠 (링크)
3) 책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
Written by LA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