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성여 씨는 작년 12월 17일 ‘화성 8차 사건’ 재심에서 최종 무죄판결을 받고 32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작은 오해에도 쉽게 억울해지는 게 사람 마음인데 그동안 얼마나 억울하고 절박했을까. 그는 앞으로 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면허와 검정고시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해외여행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판결 전에는 여권을 바로 만들 수 없었지만, 전과자 신분이 올해 없어져 이제 여권을 만들 수 있다. 그는 건강하고 씩씩하게 살겠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더는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게 신경 써주길 바란다고도 덧붙였다. 댓글로 많은 격려와 응원 댓글이 이어졌다. 윤성여 씨는 그동안 어떻게 긴 시간을 버텨왔을까.
1) 잃어버린 일상
윤성여 씨는 체포 당시 나이 22살이었다. 1989년 7월 저녁을 먹던 중 갑자기 경찰이 수갑을 채워서 갔다. 증거는 조작됐고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가혹한 고문이 이어졌다. 집에는 금전적 여유가 없었다. 누구도 보호해줄 수 없었던 그는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거친 수감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흉악범이라는 이유로 더욱 싸늘한 시선을 받아야 했다.
2) 정체성 몸살
그는 기약 없던 무기수에서 2009년 8월 특별사면으로 가석방됐다. 20년 만에 마주한 세상은 너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출소 후 처음 찾은 식당에서는 수저가 무거워 떨어트렸다. 수감 중에는 플라스틱 수저를 사용해왔기 때문이다. 처음 탄 버스에서 헤매느라 집 찾는 데만 10시간이 걸렸다. 그의 기억은 1990년에 멈춰있었고 혼란 그 자체였다. 너무 큰 절망감에 두 달 동안 집 밖에도 나오지 않았고 친척들에게도 외면받았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노래방에서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10년을 버티니 나아졌다고 한다. 진범이 자백했음에도 다시 무죄판결을 받기 전까지 여전한 제한이 많았고 마음 놓을 수 없었다.
3) 한 사람만 믿어주면 살 수 있다
박종덕 교도관은 많은 수용자를 만나고 상담하면서 자신의 죄가 부풀려져서 억울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중 유일하게 윤성여 씨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자신이 하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이야기했다. 그때부터 더 가까이하게 됐고 커피가 귀한 시절 커피를 전하거나 수감자임에도 이름을 불러주며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를 했다. 윤성여 씨는 자신을 믿어준 사람이 있어서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철저히 혼자였던 그에게 박 교도관은 끝까지 살아야 한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사회에 나가서 전과자 낙인으로 힘들 때도 박 교도관의 도움으로 취업도 하고 자리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진범이 자백을 했고 함께 재심까지 진행하게 됐다. 한 사람만 믿어주어도 살 수 있다. 혼자 눈물 흘리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4) 잘못을 되돌릴 기회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하고 실수도 한다. 하지만 인정이 너무 늦어져서는 안 된다. 법원의 안이한 판단이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실수를 바로 잡을 기회를 묵인해서도 안 된다. 그 당시 경찰은 무고를 알면서도 진술을 조작했다. 과정은 강압적이었고 약자는 저항할 수 없었다. 잘못된 절차로 진행된 허위수사였다고 해도 확정판결이 나면 재심은 거의 불가능하다. 한번 세워진 법적 안정성의 가치는 한두 명의 작은 억울함에는 꿈쩍 않는다. 윤성여 씨의 경우 진범의 자백 같은 우연한 외부사정 덕에 과거의 결론이 깨진 것이지 비슷한 사정이 있는 다른 사건이 또 없으리라는 법 없다. 이렇게 알려질 운조차 없는 사람들이 여전히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무죄가 밝혀지고 법률에 따른 금전적 보상을 받더라도 지나간 시간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잃어버린 실질적 기회들은 절대 단시간에 채울 수 없다.
5) 시간이 말해주는 것
시간은 각자의 시간 경험에 따라 다르게 흘러가며 개인의 경험이 모여 그 사람의 정체성이 된다. 윤성여 씨는 수감 생활 중 일관되게 자신은 범행하지 않았다며 무죄라고 말했다. 자신의 별명이 무죄라고 불릴 정도로 긴 시간 무죄를 말해왔다. 자신을 향한 진실된 태도와 소신이 박 교도관의 깊은 인연으로 닿아서 재심까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시간은 느려도 결국 진실을 말해준다. 혹독한 냉대와 여전했던 낙인에도 그가 인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 허무와 맞선다. 고통 속에서도 그는 의미를 찾았고 버텨냈다. 변화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관심에서부터 천천히 일어난다.
참고
1) <화성 8차 사건 재심 청구인 윤성여와 그를 믿어준 단 한 사람> 아이콘택트, 채널A (링크)
2) <화성 8차 사건 재심 무죄 받은 윤성여씨 모셨습니다> 그알저알, SBS (링크)
3) 책 <판결의 재구성>
Written by LA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