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한 영국과 비슷한 접종 우선순위를 권고하고 있다. 의료서비스 종사자와 요양원 거주자 및 종사자가 우선순위이며 소방관, 경찰관 교사 등 최전방 근로자 또한 백신 우선 접종 대상자로 본다. 하지만 주마다 실제 적용되는 백신 접종 순서는 달라질 수 있고 실제 일부 지역에서는 최전방 근로자보다 흡연자를 더 높은 우선순위로 배정했다. 흡연자가 코로나 19에 더 취약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흡연자는 코로나19에 걸리면 중증 이상으로 발전할 확률이 14배 높다는 관련 연구결과가 있고 우리 방역 당국도 코로나19 고위험군에 흡연자를 추가했다.
최근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이 밝힌 코로나19 백신 우선 접종 권장 대상안에 따르면 집단 시설에 거주하는 노인, 고위험 의료기관 종사자 및 요양 시설 종사자가 최우선 접종대상이다. 고위험군 외에는 나이순으로 접종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일부 전문가들의 의견도 있다. 어떻게 하면 합리적인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어떤 사람부터 백신을 맞게 될까. 최근 의료 자원 분배 원칙은 단일한 이론이 아닌 여러 이론을 종합하는 방식을 택한다. 각 사안마다 원칙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하며 다수의 이익을 고려하면서도 약자를 우선하는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1) 기대여명
이탈리아는 지난 3월 환자가 급증한 시기에 치료하면 더 오래 살 수 있는 환자를 우선하는 공리주의적 접근을 선택하면서 노인과 장애인을 차별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노인과 장애인은 기대 여명이 청년과 비장애인에 비해 적기 때문이다. 치료를 통해 환자가 얻게 될 수명을 중증도 분류 지표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최소 수혜자보다는 최대 이익을 강조하는 방식이다.
2) 다른 질병에 걸린 환자
중환자 치료 우선순위와 코로나19와 다른 질병 사이의 치료조정의 문제다. 의료 인력이 코로나 19치료에 집중되면서 다른 환자 돌봄에 공백이 생기는 경우가 발생했다. 다른 환자들이 방치되어 치료 시기를 놓친 안타까운 경우도 있었다. 환자가 급증해 장비와 인력 병실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중증도 분류와 합의는 더욱 중요해진다.
3) SOFA점수 (Sequential Organ Failure Assessment score)
중환자실에서 환자의 장기 기능 또는 부전 정도를 판단하는 점수로 높을수록 심각한 상태다. 가장 상태가 나쁜 환자부터 우선 치료하는 원칙이다. 계약주의에 기반을 두고 최소 수혜자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선택을 내리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응급실에서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현재 상태가 가장 나쁜 환자를 당장 살려도 더 오래 산다는 보장은 없다.
4) 백신 분배
백신은 다른 부작용도 고려해야 하고 항체 지속 기간이 짧으면 지속해서 맞아야 하기도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백신을 나누는 것이다. 백신은 모든 나라에서 만들 수 없으므로 분배와 공급 가격 문제는 중요한 쟁점이다. 국제적 연대와 논의가 필요하다.
5) 국내에 백신이 충분할 경우
백신이 충분할 경우 의료진 및 필수 분야 종사자와 어린이, 65세 이상 노인부터 우선하여 백신을 접종하면 된다. 공동체주의적 접근에 따라 더 많은 환자를 돌보게 해 사회 기능을 유지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선택이다. 신종 인플루엔자 백신 공급을 위한 예방접종전문위원회가 세운 계획과 같은 방식으로 적용해도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 의료기관 종사자, 임신부, 취학 전 아동, 초중고학생, 노인, 군인, 기타 취약계층 등 1913만 명이 해당한다.
6) 백신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사회를 보호하려면 우선적으로 의료인 필수 분야 종사자와 감염 고위험군에 백신을 공급해야 한다. 만약 1913만 명분의 백신을 구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의료인 필수 분야 종사자 감염 고위험군, 아동 집단 내에서도 다시 우선순위를 정할 필요가 있다. 이들 사이에서 더 취약한 사람과 더 중요한 임무 수행자를 구분하여 접종 순위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
7) 코로나19에 가장 취약한 노년층
코로나19의 경우 노년층의 사망률이 매우 높다. 65세 이상의 노인이 훨씬 약자이기 때문에 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전체적으로 더 많은 생명을 살리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노년층 백신 우선 공급의 경우 계약주의적 측면에서도 공리주의적 접근에서도 정당화될 수 있다.
8) 사회 전반의 합의
백신 분배를 원칙 없이 아무렇게나 시행하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정부가 단독으로 정하거나 의료 전문가 집단이 결정해서도 안 된다. 쟁점을 공론화하여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야 자발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 단일한 정의를 세우기는 어려워도 합의를 통해 방향성을 정하고 투명하게 운영하며 문제 제기를 통해 계속 수정 가능해야 한다.
9) 적절한 의료서비스 분배 원칙을 수립하려면
관련 의료 분야의 치료 지침과 중환자 분류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 감염병이 현재 의료 제도와 사회 전반에 가하는 경제적 압력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방역과 경제활동 간의 우선순위를 말하는 것이다. 백신 접종은 감염 내과의 의견과 여러 백신이 동시에 나왔을 때 각 약품의 비용 대비 효과도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함께 논의되어야만 적절한 의료서비스 분배의 원칙 수립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10) 결정의 부담
자원이 부족한 상태는 결정하는 사람에게 큰 사회적 정서적 부담이 된다. 어떤 결정도 타당하다고 할 수 없다. 따져보면 필수 분야 아닌 곳 없다는 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의 말이 이해가 간다. 하지만 논의를 그냥 미뤘다가 모두가 절망하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되며 그렇다고 결정을 의료인에게만 맡겨 놓을 수도 없다. 명확한 원칙이 원활하게 작동될 수 있어야 하며 더 나은 결정을 위한 합의가 절실하다.
참고
1) [이슈 컷] 교사보다 흡연자가 먼저?…코로나 백신 우선접종 둘러싼 갈등, 연합뉴스 (링크)
2) <누가 먼저 백신을 맞아야 할까>, 북저널리즘 (링크) 팟캐스트 (링크)
3) 이미지 출처: 빅이슈, SBS (링크)
Written by LA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