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으로 인한 물질적 정서적 박탈의 경험이 길어지면 자신과 세계를 마주할 힘도 소진된다. 빈약한 경험은 선택지를 좁고 한정적으로 만들며 이러한 차이는 삶을 바라보는 방식과 미래에 대한 기대마저 달라지게 한다. 누군가에게 당연한 미래계획이 다른 누군가에겐 전혀 당연하지 않을 수 있으며 삶을 실험할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기 어렵다.
가난한 사람들은 정서적 스트레스로 인해 만성질환과 심리적 문제에 더욱 취약하다. 분노만 남은 약자의 정신은 타인의 무신경 속에서 더욱 흐려질 뿐이다. 그들의 사기를 꺾어 무능하게 만드는 환경에 대한 실질적 조치는 충분하지 않다. 빈곤 산업은 빈자의 생각을 거부하며 가난한 자들이 외부지원과 전문지식에 계속해서 의존하길 바란다.
가난을 견디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믿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분노의 이유를 성찰하려면 세계와 자신을 대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빈자가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정신을 집중하기 버거운 상황에서 엄청난 용기를 내어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방법을 몰라 견디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연결은 특히 중요하다. 그들에게는 삶의 불안과 혼돈을 딛고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는 연결이 누구보다 절실하다.
<20vs80의 사회> 저자 리처드 리브스는 상위 20퍼센트 자녀들은 최적의 성장환경에서 준비된 출산과 안정된 양육을 통해 높은 시장경쟁력을 갖추게 된다고 했다. 절차나 규칙을 우회하는 편법 없이도 능력주의 사회의 인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전망도 불확실한 부모에게서 덜컥 태어난 중하류층 가정의 아이와 경쟁력은 다를 수밖에 없다. 기회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경제적 여유를 중심으로 상위 20퍼센트 안에서 내부 순환할 뿐이다. 한 사람의 인지적 비인지적 능력이 부모의 계층에 따라 달라진다는 한국의 연구들도 기회의 평등과 유지는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책 <아비투스>에서는 계층이동을 위한 자본 중 가장 쌓기 어려운 것이 문화 자본이라 말한다. 소비 능력은 늦게라도 갖출 수 있지만, 생활양식과 문화적 소양의 깊이 차이는 절대 단시간에 쉽게 좁힐 수 없다는 것이다. 일찍 예술을 접해 관련 지식이 해박할수록 접근 수준이 달라지고 해외 경험이 많을수록 인적 네트워크 규모도 커질 수밖에 없다. 무엇이 됐든 늦게 시작한 사람은 불리하다. 문화 자본이야말로 더 높은 차원과의 연결이자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이라는데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의 꿈은 더욱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존 롤스는 최초 출발점과 상관없이 재능과 능력을 활용할 의지가 같다면 성공 전망이 같아야 한다는 기회 균등론을 내세우면서 노력하려는 의지조차 가족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는데, 실제 한국 사회를 비롯한 여러 사회의 경험 연구를 통해 우려가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집안에서 대학에 처음 진학한 1세대 대학생의 사례 연구에 따르면 가족의 지원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노력파는 방학 때도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며 부족한 지식을 동원해 혼자 대학 원서를 준비한다. 낮은 확률로 대학에 진학하고 일부 졸업 후 전문직에 자리 잡기도 하지만 그들의 성공에는 윤리적 비용마저 발생한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공동체를 떠나야 하는 관계의 상실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하위계층에게 노력은 단순히 성실한 습관 형성과 꾸준한 집중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뛰어넘는 도전이 되기 때문이다.
개인의 의지와 노력을 탓하기 전에 좌절할 수밖에 없는 환경적인 요소들을 함께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제도를 통해 시도할 수 있는 최선은 개인에게 주어지는 기회를 다양하게 확대하고 경로가 제한된 사람들에게는 우선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의미 있는 사회적 연결을 통해 미래에 대한 기대와 가능성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참고
1) <가난이 대물림 되는 이유.jpg>, 개드립 (링크)
2) <서울리뷰오브북스>
3) 책 <아비투스>
Written by LA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