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한 부유한 집 자녀였던 블랑쉐는 돌연 자취를 감춘다. 연인과의 만남을 반대한 어머니의 감금 때문이었다. 가난한 변호사 연인과 헤어지지 않겠다는 딸의 말에 격분해 그때부터 햇빛 하나 들지 않는 다락방에 딸을 가둔 것이다. 1901년 프랑스 법무부 장관에게 한 여인이 다락방에 갇혀 있다는 익명의 편지 한 통이 도착하면서 경찰이 다락방을 확인하게 됐고, 25년 만에 세상에 알려진다. 발견 당시 어두컴컴한 다락방에는 악취가 진동했고, 오물과 음식물로 뒤덮인 침대에는 뼈가 앙상한 블랑쉐가 누워있었다. 재판이 끝난 며칠 뒤 어머니가 사망하며 블랑쉐는 자유의 몸이 됐지만,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일생을 보내야 했다.
자녀를 자신의 마음대로 하려는 마음은 범죄에 버금가는 파괴력을 가진다. 모성 뒤에 숨은 이런 잔혹성은 많은 동화에 나오는 마녀의 모습과도 같다. 마녀는 무서운 어머니이자 상징적인 여성성의 어두운 측면을 뜻하기도 한다. 자녀를 모성 안에 가두려는 무심한 무의식인 것이다. 지나친 보호는 자녀의 의식을 압박하며 모든 성장을 방해한다. 어머니의 음울한 본성이 만든 무서운 세계인 것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말레피센트에서도 왕과 왕비는 파괴적이고 위험한 세계로부터 딸을 온전히 보호하고자 한다. 그 보상으로 오로라 공주는 사춘기에도 자의식을 갖지 못했고 남성성을 상징하는 왕자가 부모로부터 그녀를 구한다. 여기에서 왕자는 사랑하는 연인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여성 자신의 각성과 명료한 정신, 독립심을 의미하기도 한다. 디즈니가 2013년 발표한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바로 이런 여성의 주체성에 좀 더 초점을 둔다고 할 수 있다.
블랑쉐 이야기에서도 사랑하는 연인은 자기 결정이자 명확한 자기표현이었고, 어머니는 딸이 맞서야 할 하나의 무서운 세계였다. 누군가 한 사람의 성장을 어느 정도까지 도울 수 있지만, 그 이상의 지나친 보호와 통제는 의존성을 키우고 정신을 망가뜨리는 일이 될 뿐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온전한 개인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압박하는 세계에 순응하지 않고 맞설 수 있어야 한다.
어머니는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었던 수많은 시간을 무심히 흘려보냈다. 딸을 설득하는 과정에 자신의 실수가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딸의 고통을 애써 외면했다. 나도 내 인생을 제대로 만들기 쉽지 않은데 자녀의 인생을 자기 생각대로 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자녀를 믿고 자녀의 선택을 지지해주는 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 아닐까 싶다. 부모라면 걱정이 되더라도 지혜로운 방법으로 자신의 염려를 전하며 합리적인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딸이 단념하지 않은 대가는 너무 가혹했다.
참고
1) <자기 어머니에 의해 25년간 감금된 여자 전후>, 더쿠
2) 책 <12가지 인생의 법칙>
Written by LA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