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으로 얻는 수많은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1) 당연한 건 없다
며느리를 아들의 배우자이자 아이 엄마임을 먼저 존중해야 했다. 손주 이름부터 운운하면 새 가족으로서의 인정이 아닌, 아이 낳는 수단이 된 듯한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 인격적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에 누구라도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아이와 아이 양육에 관한 결정은 부모가 하는 것이다. 시댁에서 아이 낳기를 종용하거나 특정 성별을 강요하는 것도 인격적인 대우라 할 수 없다. 더군다나 예의를 갖춰야 하는 상견례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했다는 건 앞으로 더한 인격 모독과 간섭이 계속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새로운 가족은 길들여야 할 존재가 아니다. 며느리를 한 인간으로서 먼저 존중해야 한다. 왜곡된 가족 문화에서 나를 지키려면 내 의견을 분명히 전할 수 있어야 한다. 대충 넘어가면 갈등이 본격화될 뿐이다. 삶의 기준과 방향은 부부가 정하는 것임을 기억하자.
2) 남편이 할 수 있는 한마디
결혼 후 최고의 남편은 시댁에서 얼마나 아내를 보호해줄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남편이 아내 마음을 알아주고 다정히 위로해 주면 어떤 상황이든 함께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아물지 않은 곳에 계속 생기는 상처를 계속 버텨낼 사람은 없다. 단번에 모든 상황을 바꾸지는 못해도, 버티는 힘이 되고 약이 되는 사람이 남편이다. 아내가 힘들어한다면 무엇을 위해 결혼했는지, 부모님이 안쓰러워 아내를 다시 그렇게 만드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남편이 아내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은 방관하지 않는 것이다. 한마디라도 확실히 해주면 좋다. “저희 부부가 의논해서 결정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거의 모든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강력한 말이 아닐까.
3) 그만둘 용기
며느리로서 살아본 어머니들은 선택할 수 있다. 자신들이 겪은 불합리와 부당함을 세상에 똑같이 물려줄 것인지 아닌지 말이다. 자신의 아픔이 대물림되지 않길 바라는 부모가 있을 것이고, 문제가 보여도 묵인하거나 질서를 이탈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부모도 있다. 분란을 만들기 싫어서, 주변 체면 생각해서 적당히 맞춰 살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자신의 딸이 겪을 갈등에 마음 아파하면서 며느리에게는 사돈과 같은 시어머니가 되기도 한다. 가부장 문화는 개인의 문제만이 아닌 세대 간의 복잡한 문제이며, 여전히 이런 아픔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 것이라며 희생을 강요하거나 묵인해서는 안 된다. 며느리의 눈물로 지켜내는 체면은 아무 소용 없다. 가족이라면 모든 구성원이 한 개인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 용기 있는 선택이 예민함으로 치부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필요한 순간에는 도리에 타협하지 않고 나를 지키는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참고
1) <아이 이름을 집안 돌림자 쓰는 게 파혼 사유?>, 네이트판
2) 책 <님아 그 선을 넘지 마오>
3) 책 <B급 며느리>
Written by LA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