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과 죽음은 실습이 허용되지 않는다. 죽음은 그저 이론이나 상상으로 짐작할 뿐 실체를 볼 수 없다.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눈앞에 둘 때까지 죽음을 알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며 슬퍼할 때 삶과 죽음이 가까운 것을 느낀다.

선불교 스승인 다이닌 가타기리 선사는 우리 인생은 깨지기 쉬운 사기그릇과 같다고 말한다. 인생은 사기그릇처럼 위태로운 아름다움이다. 죽음은 결코 피할 수 없다.

언젠가 우리는 사라지기 때문에 인생은 아름답고 고귀하다. 그런데 이 사실을 대부분 잊고 산다. 우리 삶의 중심엔 늘 내일이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내일은 빨래가 다 끝났을 수 있다. 내일은 여름휴가를 시작하는 날이 될 수 있다. 내일은 은퇴 후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날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곧 죽는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내일은 없다. 내년도 없다. 오로지 지금만 있다. 그래도 우리는 계획을 세운다.

씨를 뿌리고 수확을 기다리는 농부처럼 확실하지 않은 내일을 준비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죽음을 면치 못한다. 애써 그 점을 무시할 뿐이다. 다들 제 나이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자나 깨나 젊게 보이려고 신경 쓰지만 몸을 제대로 깊이 들여다보지 않는다.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죽는다는 현실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면 머리가 빠지고 검버섯이 피고 뼈가 약해진다.

대부분 죽음을 앞둔 노쇠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한때는 젊고 아름다웠다는 사실을 잊는다. 우리도 언젠가 그들처럼 늙고 병든다. 어쩌면 늙고 병들기 전에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면 삶을 직시해야 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고,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며 가진 것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존재며, 언젠가 죽을 운명에 처한 고통 받는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변하고 우리가 아끼는 것도 변하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도 모두 변한다. 세상 만물이 다 그렇다.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세상 만물이 변하듯 우리도 변하는 것일 뿐이다.놀랍고도 멋진 가혹한 현실이다. 오래된 불교 명상법에서는 이 사실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본래 나이가 들 운명이다.

나는 본래 병이 들 운명이다.

나는 본래 죽을 운명이다.

나에게 소중한 전부와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본래 변할 운명이다.

그런 운명에서 벗어날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철학적으로 사색한다면 죽을 준비가 됐다는 뜻이다. 자기가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기 전과 후로 인생이 갈린다. 당신과 나는 틀림없이 일정 기간 질병을 앓다 죽을 것이다. 그 와중에 가족과 친구가 이런 식으로 죽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물론 한순간에 내가 죽거나, 소중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죽음을 똑바로 바라보고, 만져보고, 죽음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자신의 죽음과 타인의 죽음에 조금 더 편해지고 싶다면 그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말은 육신이 아직 이승에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육신은 세상의 모든 힘에 지배당하고 스러져서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습관을 형성하고 경험을 통해 배우고 약점과 강점을 파악하면서 자신의 미래를 가꿔나간다. 죽음의 순간에 우리가 맞이하게 될 사람, 즉 미래의 나를 완성하고 있다.

병상에 누워 죽어가는 사람의 얼굴에서 삶의 흔적을 볼 수 있다. 편안한 몸이나 경직된 몸에서, 얼굴에 팬 주름이나 표정, 눈매에서 그 사람의 인생을 엿볼 수 있다.

좋은 죽음은 없다. 죽음은 성공과 실패의 문제도 아니고, 성취해야 할 대상도 아니다. 삶과 죽음은 소유물이 아니다. 죽음의 가치는 남들의 생각에 달리지 않는다. 우리가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다. 죽음이 우리를 선택한다. 대부분 죽음을 아주 막연하게 생각하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바로 내가, 나 자신이 죽을 거라는 사실을 퍼뜩 깨닫는다. 생각만 해도 섬뜩하지만, 순식간에 스쳐 지나는 이 통찰이 삶을 변화시킨다.

육신이 소멸하고, 이승을 하직해야 한다는 걸 알고 나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죽음에 다가가면 우리의 모든 근원적 믿음이 분명해진다. 우리의 삶을 둘러싼 것에 대한 자각도 명확해진다. 죽음의 순간은 어떤 것의 종료나 중단이 아닌 완성이다. 삶의 총결산이다. 죽음 속에는 죽음 외에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 순간만이 존재한다. 우리가 사는 곳은 지금, 이 순간이다. 삶은 온전히 삶이고, 죽음은 온전히 죽음이다. 살아가든 죽어가든, 우리가 그 속에 완전히 잠겨 있으면 그 순간이 전부다. 우리는 매 순간 죽고 매 순간 새로운 자아로 거듭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