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상황에서 링컨은 자신이 간절히 원했던 직책에서 탈락했다는 걸 알게 되자 출세하겠다는 희망을 버렸다. 그때 링컨이 토로한 감정은 중년으로 넘어가는 혼란스러운 과정에서 반복되는 푸념이 됐다. 링컨은 “너무 힘들다. 이 땅에서 결코 살지 않았던 것처럼 죽어 이 땅을 떠나야 한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라고 토로했다. 세월이 지나 대통령이 된 뒤에도 그때의 감정이 여전히 강렬히 남았던지 링컨은 “내 삶에서 그때만큼 낙담한 때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링컨이 연방 하원의원으로 재임한 2년은 짧기도 했지만 불운하기도 했다. 그 이후에 5년은 흔히 공적인 삶에서 완전히 물러난 시기로 묘사된다. 링컨은 이때 정치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 의혹을 제기할 사람도 있겠지만, “여느 때보다 열심히 변호사로 활동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 시기는 결코 수동적으로 보낸 시간은 아니었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도, 또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크게 성장한 시기였다. 실제로 그 시기에 링컨은 변호사로서 입지를 굳혔고, 미국을 괴롭히기 시작한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리더로도 올라섰다.

링컨이 이 시기를 보람 있게 보내며 자기계발에 힘쓴 이유는 무엇일까? 이 의문의 답은 자신을 가감 없이 들여다보며 냉정하게 자신을 분석하는 자발성에 있었다. 처음부터 링컨은 공동체의 기억을 남기는 역사책에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있기를 바랬다. 그의 생각에 그 운명을 이뤄내려면 다양한 부문에서 지속적인 노력과 절제력이 필요했다. 약점과 결함을 직시하고, 실패를 반성하며, 자신이 지향하는 리더의 모습을 점검하는 적극성도 필요했다.

이러한 내적 성찰의 시기에 링컨이 보여준 근면성과 학구열은 젊은 학생이었더라도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하물며 마흔에 이른 이른 남자가 그랬으니 더욱더 놀라울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