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근심과 걱정을 밖에서 오는 귀찮은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을 삶의 과정으로 생각해야 한다. 숙제로 생각해야 한다. 자신에게 어떤 걱정과 근심거리가 있다면 회피해선 안 된다. 그걸 딛고 일어서야 한다. 어떤 의미가 있는가? 왜 이런 불행이 닥치는가? 이것을 안으로 살피고 딛고 일어서야 한다.
저마다 이 세상에 자기 짐을 지고 나온다. 그 짐마다 무게가 다르다. 누구든지 이 세상에 나온 사람들은 남들이 넘겨볼 수 없는 짐을 지고 있다. 그것이 그 인생이다. 따라서 세상살이에 어려움이 있다고 달아나서는 안 된다. 그 어려움을 통해서 그걸 딛고 일어서는 새로운 창의력을, 의지력을 키우라는 우주의 소식으로 받아야 들여야 한다.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고 했다. 장애가 없는 건 어디에도 없다. 한평생 세상을 살다 보면 무수한 장애물이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 자리에 오면서 얼마나 많은 장애물을 헤치고 왔는가? 그러므로 인생이란 일종의 장애물 경주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경주이다.
해탈이란 무엇인가? 그런 장애물을 넘어서 안팎으로 자유로워진 상태, 안팎으로 홀가분해진 상태, 이것을 해탈이라 부른다. 장애라는 것은 해탈에 이르는 디딤돌이자 발판이다. 그런 장애가 없으면 해탈도 있을 수 없다.
장애 없길 바라선 안 된다. 장애는 해탈의 길로 이어진 길목이다. 그러므로 장애를 거부하지 말고 그걸 받아들이라고 옛 성인은 말하고 있다. 장애 없이는 해탈이 불가능하다.
또 성인은 말씀하기를 ‘작은 이익으로써 부자가 되라.’고 하셨다. 작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행복의 비결은 결코 크고 많은 데 있지 않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 어떠한가? 모두가 입만 열면 경제 이야기만 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경제만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 그런 일에만 치우치고 있다.
오늘날 경제가 어려운 것은 일찍이 우리가 큰 그릇을 만들어 놓지 않고 자꾸 욕심껏 담기만 하려고 한 결과이다. 이 불황은 우리들 마음이 그만큼 빈약하다는 증거이다. 그릇을 키우려면 눈앞의 이익에 매달리지 말고 마음을 닦아야 한다. 개체를 넘어서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 소욕지족, 적은 것으로써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넉넉해진다.
참고:《산에는 꽃이 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