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앞에는 항상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놓여 있다. 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각자 삶의 양식에 따라서 오르막길을 오르는 사람도 있고,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사람도 있다. 오르막길은 어렵고 힘들지만 그 길은 인간의 길이고 꼭대기에 이르는 길이다. 내리막길은 쉽고 편리하지만 그 길은 구렁으로 떨어지는 길이다.

만일 우리가 평탄한 길만 걷는다고 생각해 보라. 십 년 이십 년 한 생애를 늘 평탄한 길만 간다고 생각해 보라. 그 생이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그것은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오르막길을 통해 뭔가 뻐근한 삶의 저항 같은 것도 느끼고, 창조의 의욕도 생겨나고, 새로운 삶의 의지도 지닐 수 있다. 오르막길을 통해 우리는 거듭 태어날 수 있다. 어려움을 겪지 않고는 거듭 태어날 수 없다.

세상이 달라지기를 바란다면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이 달라져야 한다. 내 자신부터 달라져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모습이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이 달라진다. 내 자신이 세상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의 일부이다.

내 자신이 몹시 초라하고 부끄럽게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은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 앞에 섰을 때는 결코 아니다. 나보다 훨씬 적게 가졌어도 그 단순과 간소함 속에서 삶의 기쁨과 순수성을 잃지 않는 사람 앞에 섰을 때이다. 그때 내 자신이 몹시 초라하고 가난하게 보인다.

옛사람들은 어렵고 가난한 생활 가운데서도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길 줄 알았다. 마음의 안정과 여유를 잃지 않고 살았다. ‘안빈낙도’란 그래서 생긴 말이다. 가난 속에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기며 산다는 뜻이다. 그 지혜를 우리가 배워야만 한다.

어려운 때일수록 낙관적인 생활 태도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명상 서적을 읽어보면, 우주의 기운은 자력과 같아서 우리가 어두운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어두운 기운이 몰려온다고 적혀 있다. 우리가 밝은 마음을 지니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살면 밝은 기운이 밀려온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누구에게나 삶의 고민이 있다. 그것이 그 삶의 무게이다. 그것이 그 삶의 빛깔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어떤 물건도 갖고 오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들 무슨 손해가 있겠는가? 내가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는데 가난한들 손해 될 게 무엇인가? 또 살 만큼 살다 이 세상을 하직할 때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 죽을 때 부유한들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내 것이 어디 있는가? 우리는 이 우주의 선물을, 신이 주신 선물을 잠시 맡아서 관리하는 것일 뿐이다. 그 기간이 끝나거나 관리를 잘못하면 곧바로 회수당한다. 이게 우주의 리듬이다.

참고: 《산에는 꽃이 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