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자기가 살던 집을 훌쩍 나오라는 소리가 아니다. 낡은 생각에서, 낡은 생활 습관에서 떨치고 나오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눌러앉아서 세상 흐름대로 따르다 보면 자기 빛깔도 없어지고 자기 삶도 없어진다. 자주적으로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남의 장단에 의해서, 마치 어떤 흐름에 의해서 삶에 표류당하는 것처럼 되어 버린다.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곧 자기답게 사는 것이다. 자기답게 거듭거듭 시작하며 사는 일이다. 낡은 탈로부터 낡은 울타리로부터, 낡은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생명은 늘 새롭다. 생명은 늘 흐르는 강물처럼 새롭다. 그런데 틀에 갇히면, 늪에 갇히면, 그것이 상하고 만다. 거듭거듭 둘레에 에워싼 제방을 무너뜨리고라도 늘 흐르는 쪽으로 살아야 한다.

그 전에 불일암에 있을 때도 혼자 사니까 가끔 사람들이 와서 홀로 지내기 무섭지 않느냐고 묻곤 했다. 무섭다는 것은 마음의 문제다. 밤이라고 해도 한낮과 똑같은 것이다. 그 골짜기, 그 산, 그 나무, 그 바위 그대로 있는데 단지 조명 상태가 어두워진 것일 뿐이다. 그런데 마음이 무서움을 지어낸다. 내가 세속에 있을 때는 무서움을 많이 탔었다. 특히 시골집이니까 변소에 가려면 꼭 할머니를 앞세우고 갔다가는 빨리 튀어나오곤 했다.

그러다가 무서움이 사라지게 된 계기가 있었다. 지리산 쌍계사에 있을 때인데 한번은 섣달그믐날 무슨 일로 밖에 나왔다가 화개장에서 내려 거기서부터 시오리 길을 걸어가야만 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전혀 앞이 안 보였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을 부르면서 반은 뛰다시피 하고 갔더니 옷이 전부 땀에 젖어 있었다. 그 뒤로부터는 무서운 생각이 사라졌다. 무서움이란 것이 내 마음 안에서 오는 것임을 어느 순간 깨달은 것이다.

사실 혼자 사는 사람들만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세상 사람 누구나 자기 그림자를 이끌고 살아가고 있으며, 자기 그림자를 되돌아보면 다 외롭기 마련이다. 외로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무딘 사람이다.

물론 너무 외로움에 젖어 있어도 문제이지만 때로는 옆 구리께를 스쳐 가는 외로움 같은 것을 통해서 자기 정화, 자기 삶을 맑힐 수가 있다. 따라서 가끔은 시장기 같은 외로움을 느껴야 한다.

때로는 전화도 내려놓고, 신문도 보지 말고, 단 십 분이든 삼십 분이든 허리를 바짝 펴고 벽을 보고 앉아서 나는 누구인가를 물어보라.

이렇게 스스로 묻는 속에서 근원적 삶의 뿌리 같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명의 커다란 이기로부터 벗어나 하루 한순간만이라도 순수하게 있는 시간을 갖는다면 삶의 질이 달라질 것이다.

참고: 《산에는 꽃이 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