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은 법학적 지식이 정치 이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닫고는, 첫 회기가 끝난 뒤 휴회 기간에 법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필요에 의한 독학자였던 링컨은 철저히 혼자 공부했다. 낮에는 측량사와 우체국 직원으로 일했고, 밤에는 판례와 사례를 읽고 또 읽었다. 당시 스프링필드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동료 의원, 존 스튜어트에게 한 번에 한 권씩 법률 저서를 빌렸는데, 그 책을 다 읽으면 뉴 세일럼에서 32킬로미터쯤 떨어진 스프링필드까지 걸어가 반납하고 다른 책을 빌렸다. 확고한 목표가 있었던 까닭에 링컨은 이런 고생을 견딜 수 있었다. 약 20년 뒤 링컨은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는 법학도에게도 “어떻게든 책을 구해서 읽고 연구하게. 성공하겠다는 결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항상 기억하게.”라고 말했을 정도다.

어렸을 때부터 에이브러햄 링컨은 어떤 분야에서든 성공에 반드시 필요한 자질인 자신의 모든 능력을 완전히 개발하겠다는 의욕과 의지를 항상 드러냈다. 그의 친구 너새니얼 그릭스비는 “링컨의 야망은 우리를 훨씬 능가했다. 우리가 노는 동안에도 링컨은 책을 읽고 또 읽었다.”고 회상했다. 링컨은 알파벳 쓰는 법을 처음 배웠을 때 얼마나 좋았던지 “적당한 도구를 찾아내면 어디에서나 철자와 단어와 문장을 끼적거렸다. 숯으로도 글자를 끼적였고, 먼지 더미와 모래밭과 눈밭 등 선을 그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철자와 단어를 쓰는 연습에 골몰했다.” 곡 링컨은 동네에서 최고의 필가(筆家)가 됐다.

또 다른 친구는 “링컨이 학교에 오면 친구들이 그를 빙 둘러싸고 그의 말을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럼 링컨은 친절하고 재미있게 또 재치 있고 지혜롭게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와 격언, 숫자로 설명해주었다. 거의 언제나 링컨은 자신이 깨달은 교훈이나 생각을 명확하고 평이한 이야기로 풀어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설명을 거의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요컨대 링컨은 구체적인 사례와 이야기가 최고의 교육 수단이라는 걸 일찌감치 알고 있었던 셈이다.

참고:《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