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기업의 심심한 사과 논란이 일파만파로 퍼졌다. 누리꾼들은 ‘매우 깊게 사과드린다’라는 뜻을 지닌 심심한다를 지루하다는 뜻의 ‘심심’으로 잘못 해석하고 댓글을 달면서 논란이 거세졌다. 이 현상을 목격한 사람들은 글로 된 정보를 접하지 않고, 영상으로 된 정보에 의존하면서 ‘문해력’이 낮아져 벌어진 사건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한 변호사의 주장에 따르면, 심심한 사과 논란은 단순히 문해력 문제가 아닌, 신뢰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어떤 이유로 그러한 주장을 했는지 자세히 살펴보자.

시대를 막론하고 젊은 세대와 관련된 걱정은 항상 따라다녔다. 모 개그맨의 유행어였던 ‘요즘 젊은것들은~’ 대사만 봐도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이전 세대와 다른 생각을 하고,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젊은 층을 바라보는지 보여주고 있다. 문해력 논란도 비슷한 맥락이다. 정보를 습득하는 과정이 기성세대와 다르고, 어릴 적부터 자주 사용하던 언어, 문화가 다른 만큼 사회적으로 통용되던 단어가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

개인적으로 심심한 사과에서 ‘심심’이라는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맥락상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의도가 있다는 것만 알았다. 이번 논란을 통해 심심의 진짜 의미를 배울 수 있었다. 일상에서 가까운 사람끼리 ‘심심한 사과’라는 말을 하지 않을뿐더러, 책을 읽을 때 ‘심심한 사과’라는 단어를 거의 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심심한 사과 논란은 문해력보다 세대 간 소통, 가치관이 다른 사람 간 소통의 부재에서 발생했을 거라 조심스럽게 추측한다. 더불어 실수를 실패로 낙인찍고, 개선점을 알려주기보다 인격을 비하하던 기존 우리나라 사회의 분위기, 맞춤형 알고리즘을 제공하는 SNS의 시스템도 한몫한 게 아닐까 싶다. 누군가 한 발짝 뒤에서 사건을 바라봤다면, ‘심심’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려주고 기업이 그 단어를 쓴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변호사의 주장처럼 유튜브에 흥행하는 ‘저격 문화’가 실수를 포용하고 개선하는 데 부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상대방이 그런 말을 했던 의도가 무엇이고,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던 이유가 무엇인지 조금만 생각한다면 차마 두려워서 말하지 못했던 진심을 발견할 것이다. 진심을 알아차린 순간 대면, 비대면 상관없이 상대를 존중하며 대화를 이어 나가게 된다.

‘나와 타자가 속한 맥락을 포괄적으로 이해’하려면 관용다양성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몸은 성인이지만 정보 접근이 제한된 환경에서 성장해, 비슷한 연령대보다 어휘력이 부족할 수 있다. 혹은 평균보다 습득 능력이 느려, 다른 사람보다 몇 배는 노력해야 새로운 지식을 겨우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사회 경험이 부족할수록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누군가 문맥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문해력이 낮다고 낙인찍기 전, 내가 질문을 이상하게 한 건 아닌지, 상대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논점을 흐린 건 아닌지 자신에게 물어보자. 두 가지 다 제대로 했다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에게 차분히 말의 의도를 설명해주자. 조급함을 내려놓고, 의사소통 자체에 집중한다면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훨씬 더 많습니다. – 《분열의 시대》 중에서”

참고: 정지우 페이스북 (링크)

책 《분열의 시대》

Written by HL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