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50년 전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부족했다. 대부분이 가난에 시달리고, 항상 가진 것이 떨어질까 전전긍긍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배움은 꿈도 못 꿨다. 학교에 다니는 일은 부잣집 자녀만이 누리는 특권이었다.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어린 가장들은 먹고살기 위해 배움의 과정 없이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러나 당시 근무환경은 모두 열악했다. 사람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만큼 노동자를 대했다. 유퀴즈에 출연한 할머니도 이러한 성장 과정을 겪었다. 12살 어린 나이에 서울로 상경해 식모살이한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가사도우미 일을 하며 온갖 수모를 겪었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할머니는 ‘만약 그때 글을 알았더라면 더 빨리 도움을 요청했을 텐데, 글을 몰라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말하며 그때의 고통을 생생히 전했다. 다행히 할머니의 오빠가 수소문 끝에 할머니를 찾았고, 마침내 3년의 고단한 식모살이에서 벗어났다.

인터뷰 끝에 할머니는 자신을 괴롭힌 집주인에게 놀라운 말을 전한다. 원망의 말도, 불평의 말도 아닌 담담한 응원의 말이었다.

살다 보면 식모살이를 했던 할머니처럼 의도치 않게 고통을 겪을 때가 종종 생긴다. 지은 죄도 없는데,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는데 온갖 시련이 물밀 듯이 찾아온다. 그러다 상황이 잠잠해져 이성적인 판단을 할 여유가 생길 때, 과거에 겪은 고난이 원망이 되어 평생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왜 나는 남이 겪지 않아도 될 어려움을 경험했을까?’ ‘왜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불행을 맞이했을까?’ 물으며 고통을 준 사람에게 증오심을 품기 시작한다.

오은영 박사의 저서 <화해>는 상처가 깊을수록 자신의 내면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상처 준 사람은 절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를 찾아가 용서를 해달라고 요구해도 제대로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언급하며 ‘왜곡된 창’에 매여 있지 말라고 강조한다. 상처로 만들어진 내면의 창으로 계속 세상을 보면 ‘나’는 계속 아플 수밖에 없고, 평생을 상처 안에서 머물러 살 것이기 때문이다.

<화해>는 상처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이 상처가 회복되어야만 ‘내’가 뭔가 할 수 있다’라는 생각에 매몰되지 않을 것을 강조한다. 상처를 준 사람과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어야만 내가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하는 것’이 역설적이게도 상처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대신 ‘그 일은 이미 벌어진 일이며, 어떻게 해도 없었던 일이 되지 않는다’라고 받아들여 상처와 나의 관계를 끝내야 한다. 책은 “이제 그 관계는 마무리되었다.” 문장을 되뇌어 고통을 괴로움으로 바꾸지 않아야 한다고 언급한다.

용서는 내가 나와 하는 것이다. 상처 준 사람은 죽을 때까지 나에게 사과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도 죽을 때까지 그들을 용서하지 못할 수도 있다. 상대에게 무엇인가 해 보려 발버둥 치기보다 그냥 그대로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은 내 뜻대로 바꿀 수 없다. 대신 힘없이 당했던 ‘나’를 용서하고, 수치심에 불안해했던 ‘나’를 용서하고, 자신을 형편없이 생각했던 ‘나’를 용서하고, 원망하는 자신의 모습에 치를 떨었던 ‘나’를 먼저 용서해야 한다. 자신의 상처받은 내면과 손을 잡을 때 비로소 과거의 상처와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1) 이미지 출처: 유퀴즈 온 더 블럭, tvN

2) 책 <화해>

Written by HL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