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토론문화가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다. 회의 시간 상사의 주장에 반대 의견을 제안하면 따가운 눈총을 받거나, 재수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일상에서도 상대방이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내가 읽었던 책에서는 그렇게 말 안 하던데?’ 말하면, ‘네가 뭘 알아? 기분 나쁘게 왜 시비야? 잘났어 정말…’ 같이 감정적인 반응이 돌아온다.

오랫동안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란 터라, 우리는 자신의 의사를 합리적이고,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토론으로 시작했다가 감정싸움으로 끝나는 경우가 흔하다. 또한 성인이 된 이후 대부분 업무 관련 분야 빼고는 공부를 안 하는 것도 생산적인 토론이 되지 않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한 커뮤니티에 읽어보면 좋은 영감을 받을만한 이야기가 올라왔다. 내용은 한국과 서구권의 토론 문화 차이점이다. 작성자는 해외 대학을 다니는 유학생이며, 비판적 사고에 익숙한 영국의 수업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자신이 그동안 공부한 방법이 쓸모없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글이 주장하는 바를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 주황색 표시를 한 마지막 댓글처럼, 한국의 주입식 교육은 반세기 만에 가난했던 나라를 지금의 형태로 이끈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나라도 개인의 의견을 다 받아들이고, 천천히 느긋하게 살아가는 방식을 추구했다면 지금까지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컴퓨터 앞에 편안히 앉아 문서를 작성하는 일은 꿈도 못 꾸고, 온종일 허리가 휘어지도록 밭을 매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한국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기 전, 지금의 한국이 있기까지의 배경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주입식 교육은 요즘처럼 트렌드가 급변하는 세상에서는 큰 효과를 얻지 못한다. 정보의 주기는 짧아지고, 학교에서 상식처럼 배운 개념이 하나둘씩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인공지능이 상용화되면서 단순히 지식을 많이 아는 능력이 중요한 게 아닌, 지식을 자신의 관점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형태로 제공하는 능력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런 변화로 인해 요즘 사람들이 해외의 ‘비판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토론 문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비판적 사고’는 절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사회 현상을 다각도로 해석하고, 토론 거리로 끌어내려면 먼저 폭넓은 지식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전문분야뿐만 아니라 교양도 다양하게 접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 <생각의 탄생>은 정답이 없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폴리매스’ 즉, 박식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러 분야를 탐구하며 지식의 범위를 넓혀 혁신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결국, 비판적 사고가 가능한 ‘박식가적 기질’을 발전시키려면 폭넓은 ‘독서’가 필요하다. 단순히 책만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닌, 기록을 남기고, 주변 지인에게 읽은 내용을 공유하고, 독서 모임에 참여해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니 해외 사례를 보며 배우되, 너무 부러워하지는 말자. 지금부터 꾸준히 지적 활동을 이어나간다면, 좋은 토론문화와 혁신을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1) 해외대학에서 수업듣고 문화충격 먹어본 달글, 더쿠(링크)

2) 이미지 출처: 청춘시대, Jtbc

3) 책 <생각의 탄생>

Written by HL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