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피’는 수수께끼의 물질이었다. 조상들은 병을 낫게 하려면 피를 뽑아야 한다는 믿음이 있어, 환자의 몸에 구멍을 내 피를 쏟게 만드는 치료법이 흔했다. 당시 피에 대한 여러 가지 속설이 있었는데, 그 중 ‘수혈’을 하면 상대의 영혼이 이식된다는 ‘상식’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그래서 긴급하게 수혈을 할 때 양, 송아지 등 동물의 피를 이식받았고, 합병증에 대한 이해가 없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18세기 초, 처음으로 사람의 피를 수혈하는 치료법을 발견했지만 ‘혈액형’이 발견되지 않았던 터라, 생명 유지는 ‘복불복’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깨끗이 낫고 다른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죽어야 했다.

하지만 1900년대, 우리가 흔히 아는 혈액형이 발견되었다. 이 획기적인 발견을 한 사람은 오스트리아 병리학자인 카를 란트슈타이너다.

당시 혈액형은 부작용을 줄이는 수혈을 하기 위해 쓰였으나, 식민지배가 성행하던 시대적 흐름에 따라 우월한 인종과 열등한 인종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했다. 어쨌든, 혈액형의 발견은 자그마치 ‘10억’ 명을 살린 연구였다. 만약 지금까지 혈액형의 존재를 몰랐더라면 우리는 생명을 잃을 각오로 수혈을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몸이 세계라면>은 인류가 ‘합리적 추론’을 기반한 ‘과학적 사고’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이라 말한다. 동서양을 통틀어 인류는 질병이 신이나 귀신의 분노와 같은 초자연적 원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감기에 걸리면 점을 보고, 전염병이 퍼지면 부적을 붙이거나, 성직자를 찾아가 죄를 뉘우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는 분위기로 세상이 바뀌면서 ‘세계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세계의 구성원리에 대한 추상적인 질문을 던지고 ‘구체적인 발견’을 하기 위해 가설을 검증하고 또 검증했다. 몸을 해부하고, 핏속에 들은 성분을 낱낱이 파헤쳤다. 이런 ‘과학적인 사고’ 덕분에 인간은 초자연적 현상을 더는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이 글을 통해 ‘당연한 상식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자신이 직접 경험했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검증을 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심지어 사회가 공유하는 상식도 ‘틀릴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새로운 지식을 접할 때마다 맹목적으로 믿기보다 ‘비판적 사고’를 통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야 한다.

어쩌면 지금의 혈액형 이론도 완전하지 않을 수 있다. 사람의 몸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4가지 혈액형에 맞춰 피를 수혈하는 건 어딘가 불완전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문제가 아닌 끊임없이 검증하고 또 검증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니 ‘저 사람이 하는 말은 전부 다 진실이야.’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전부다’ ‘이 학자의 이론은 절대 틀린 말이 없다’는 사고방식을 경계하길 바란다. 지금의 발전된 세상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 통념과 싸운 결과일 수 있으니 말이다.

1) 혈액형과 성격, 정말 관계가 있을까?, 긴급과학 유튜브 (링크)

2) 책 <우리 몸이 세계라면>

3) 이미지 출처: 이웃집 과학자 (링크)

Written by HL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