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해봐야 알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일하면서 시야가 달라지고 돈을 모아두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도움이 된다는 말도 있었다. 소비사회에서 소비력 없는 사람이 설 곳은 거의 없다. 그런 현실을 모르지 않아서 대부분 가만히 있는 것에 불안을 느끼는 것일 거다. 사람들은 여전히 노동을 기준으로 가치와 쓸모를 구분한다. 열심히 한다고 모두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노동시장의 높은 진입장벽을 넘지 못하는 대다수는 게으름을 탓하며 무기력을 느낀다. 당장 선택지가 좁은 사람들은 접근성만 보고 나섰다가 노동의 대가를 보장받지 못하는 곳에 내몰리기도 한다. 지금의 현실과 노동 가치에 대해 더 살펴보자.

1) 실업의 의미

산업 사회는 대량 산업에 기초한 제조업 사회로 완전 고용 사회였다고 할 수 있다. 완전 고용은 어떤 사람이 직장을 잃어도 일정 시간을 기다리면 유사한 수준의 일자리를 찾아 노동시장으로 어렵지 않게 돌아갈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이때 노동자 실직은 새로운 직업을 가질 때까지 잠시 쉬는 것이었다. 지금은 불완전 고용 사회로 실업 이후 유사한 수준의 일자를 찾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실업급여 제도가 있어도 1년을 쉬고 이전 수준의 직업을 다시 가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소비사회에서 직장이 없다는 건 소비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2) 소비사회의 핵심세력

산업 사회는 생산하는 노동자들이 핵심세력으로 연대하며 존중받는 사회였다. 그러나 지금의 소비 시대는 높은 소득과 자산을 지닌 소비력 있는 사람들이 사회의 핵심세력으로 보호받는다. 대부분 국가에서 소득과 부는 그 사회의 10-20%에 집중되어 있고 소비력이 없는 하위 80%는 국가의 관심과 보호를 받지 못할 확률이 높다. 요즘은 실직 후 직업을 다시 찾지 못하거나 정규직 노동시장의 진입장벽에 막힌 사람들이 플랫폼 노동으로 넘어오는 경우가 많다.

3) 플랫폼 노동

플랫폼 노동은 공유 경제라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유휴자산을 활용해 부업을 하는 노동 방식을 말한다. 플랫폼 노동의 특징으로 노동을 제공하는 개인이 기업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 플랫폼을 통해 연결된 고객에게 서비스를 직접 제공한다는 것, 개인이 일한 만큼 벌 수 있다는 것이 있다. 컨시어지 직종은 플랫폼 노동의 대표적인 유형으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위탁을 받아 이동, 청소, 배달, 심부름 같은 일을 한다. 집사나 하인이 하던 일이라 하인 경제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위탁받은 건수만큼 플랫폼 회사에 일정 수수료를 내고 별점으로 관리받는다.

4) 모호한 노동

부업과 독립 사업자의 말의 핵심은 특정 회사에 상시 고용된 것이 아니라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실은 고객 요청에 바로 응대하지 못하거나 일정 기간 안에 일정 작업을 소화하지 못하면 활동이 중지될 수 있어서 늘 대기 상태에 있어야 한다. 무엇이 됐든 계약은 독립 사업자로 한 것이라 회사는 노동자에 대한 다양한 책임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 플랫폼 회사는 초기 투자 비용보다 유지 비용은 많이 들지 않는데도 노동자에게 높은 수수료를 받는다. 컨시어지 직종 플랫폼 회사 모두 거의 같은 방식으로 움직인다.

5) 부업이 본업인 사람들

플랫폼 회사들은 부업이라 주장하지만 많은 이들이 생업으로 하고 있다. 2015년 미국의 프리랜서 협동조합에서 플랫폼 기업에서 독립 사업자로 일했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부업으로 일한 사람은 25%였고 70% 넘는 사람이 생업으로 여기고 있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보고서에도 플랫폼 노동을 부업으로 하고 있다고 말한 사람은 46.3%이었고 주업이라고 한 사람은 53.7%였다. 아직 우버 같은 플랫폼이 없고 에어비앤비는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데도 그렇다. 플랫폼 노동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이 많다.

6) 휴먼 클라우드

하나의 프로젝트에서 작게 나눠 단순 업무를 반복하는 휴먼 크라우드 노동자들도 있다. 단순 작업을 할 때마다 푼돈을 받는 형태다. 인공지능을 공부시키기 위해 인간이 데이터를 분류하고 표시해 자료를 입력하는 식의 업무다. 작업 결과가 맘에 들지 않으면 돈을 안 주기도 하고 받을 방법도 없다고 한다. 필요 없어지면 바로 해고될 수 있다. 온라인 작업이라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는 점이 노동의 가치를 낮추는 요소가 된다. 언제든 대체되기 쉬운 만큼 허무함이 남는다. 소비사회는 노동을 존중하지 않는다. 노동윤리가 지속적으로 작동되기 어렵다.

7) 노동을 증명하는 법

고용노동부는 임금을 받지 못해서 찾아온 사람들을 노동자인지 심사부터 한다. 고용계약서와 제공된 보험이 있는지를 보고 정기적으로 보수를 받는지를 확인한다. 외주 업체에 고용된 사람들이 고용계약서로 알고 쓴 것이 사실은 용역 계약서인 경우가 많다. 고용계약서는 업무 지시 사용자가 있고 용역 계약서는 종속적 관계를 증명할 수 없다. 업무 자체를 할당하고 시간 내 맡을 일을 하면 되는 계약서일 뿐이다.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보험도 없고 참여한 만큼 받는 형태가 많다. 국가가 허용한 제도 아래에서 고용된 것인데 다시 제도적으로 배제되어 국가 보호망 외부에 놓이게 되는 사람들이다. 그 노동마저 상실하면 더 먼 외부에 포함된다.

8) 비정규직 규모의 실태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발행한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라는 보고서는 2019년 8월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855만 7,000명 비정규직이 있다고 밝혔다. 우리 주변에는 100만 명 안팎의 실업자들이 있고 직업을 찾다가 포기해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사람이 많다. 세계 곳곳에 불안정한 노동들은 빈곤과 연결된다. 개인이 살아남기 위해 능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동이 나누어지고 소외되는 사람이 생기는 것을 모두 막을 수는 없다.

9) 실패를 홀로 견디는 사람들

사회학자 바우만에 의하면 노동윤리는 열심히 일하는 것이 선이며 그렇지 않은 것을 악이라고 여기게 하는 도덕 원칙이며 가난한 사람을 도덕적으로 비난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빈곤한 사람들은 게으르다는 편견을 쉽게 가진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워킹푸어도 있다. 빈곤을 게으름으로 여기는 건 도와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에서 벗어나려는 행동이다. 능력주의는 사회 다수를 능력도 없고 게으른 사람으로 만들어 무기력하게 만든다. 조금이라도 알리려 하면 노력하지 않고 부당한 요구를 한다고 다시 비난한다. 사람들은 도덕적 수치심을 느끼면서도 사회 보다 자신에게 분노를 돌리며 혐오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10) 인간 존엄을 지키는 방법

능력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의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는 것처럼 보여도 오히려 계층 이동을 막고 있다. 엘리트 계층은 이제 자식에게 신분과 재산 대신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 능력을 만들어서 물려준다. 능력이 세습되면서 계층 이동을 막는다는 것이다. 소수의 상위계층 능력자만 부와 소득과 명예를 유지하고 민주주의의 기반인 중산층이 무너지면 차별과 혐오가 더욱 심해질 수 있다. 지금의 위기는 어려운 사람을 더 고립되게 만든다. 자신의 안전이 보장되지 못하면 누구도 신뢰할 수 없다. 개인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보호의 메시지를 전해 함께 연대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인간 존엄을 지키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참고

1) 꿈 없는 인간일수록 취직은 빨리해야 함, 인스티즈 (링크)

2) 책 <새로운 가난이 온다>

3) 이미지 출처: 도도솔솔라라솔, KBS (링크)

Written by LA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