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의 허무함을 느끼는 순간은 바로 이럴 때가 아닐까 싶다. 다양성을 존중받아야 하는 곳에서 다름을 불편해하는 상황 말이다. 다름은 해석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번거로운 것이 되기도 한다. 적당하고 보편적인 반응만 바라는 건 자신의 편함과 효율만 생각한 이기적인 행동이다. 자신과 다른 의견이라고 매번 불편함을 드러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없다. 우연이나 다름은 번거로운 일이 아니라 가치와 개성을 발견할 기회다. 무엇이든 차이 자체를 바라봐야 한다. 다양한 문제와 관점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진짜 필요한 태도는 뭘까.

1) 실천적 지혜

아무리 훌륭한 지식도 현실과 연결되지 않으면 소용없다. 실천적 지혜가 따라야 한다. 실천적 지혜는 다양한 상황에서 어떤 반응이 상대를 편하게 하고 도움이 될지 생각하는 행동이다. 자신의 불편함을 드러내기 전에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는 것이다. 예외적인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지혜를 실행하는 도덕적 노련함이라고 할 수 있다. 환자가 자리에 없을 때 병실 청소를 했음에도 다시 청소를 요구하는 환자에게 화를 내지 않고 말없이 청소를 다시 한 청소부의 행동과 같다. 실천적 지혜에는 공감과 거리감이 필요하다. 상대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없고 상대의 관점에 너무 깊이 들어가도 상황을 냉철하게 보기 어렵다.

2) 암묵적 지식

언어로 전할 수 있고 겉으로 드러나는 객관적 상황은 명시적 지식이며 말이 전해져 생길 감정들은 암묵적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분명히 표현할 수 있는 명시적 지식도 암묵적 지식의 보조로 가능한 것이다. 언어 너머로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 영향을 생각해 살피는 마음이 필요하다. 언어화할 수 없는 영역의 기술은 지식만 축적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상황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면서 몸으로 깨닫는 체험적 통찰인 것이다. 단순한 지식 전달이나 지시가 아니라 구성원의 마음을 이해하려 할 때 이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암묵적 지식이 생겨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데 무심해서는 안 될 것이다.

3) 차이를 바라보는 태도

규격화된 인재를 바라지 않으면서 다름을 거부하는 건 모순적인 태도다. 기존의 교육방식은 철도와 같이 정해진 목적지를 향한 동일성을 강조했고 효율만큼 다양성이 무시됐다. 이후 고속도로처럼 목적지에 이르는 방법은 다양해지긴 했어도 여전히 같은 목적지와 효율이 강조됐다. 반면 오솔길은 일방적이지 않다. 다른 사람이 가지 않는 길을 얼마든지 갈 수 있고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어디서 어떤 우연을 만날지 알 수 없고 목적지가 중간에 바뀌기도 한다. 사건 사고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고 우연을 통해 새로운 의미도 발견할 수도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오솔길이다.

4) 오솔길

오솔길에서는 선생과 학생의 구분이 없다. 모두가 함께 배우는 입장이다. 배울 점을 주는 모든 사람과 사물과 현상이 스승이 된다. 오솔길은 기존과 다른 차이를 발견하는 교육방식이다. 정해진 길이나 반드시 따라야 할 방침도 없다. 우연에서 자극을 얻고 새로운 각성을 할 수 있다. 창의적인 생각과 사유도 우연한 마주침에서 생겨난다. 세상을 이끄는 사람은 생각만 오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양한 시도로 우발적 만남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다. 다양성을 인지하고 행동한 만큼 이해의 폭이 커진다. 생각지도 못한 생각을 떠올릴 수도 있다. 이질적이고 모순적인 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5) 열정 공동체

방향성이 같은 공동체 안에서도 다른 관점은 언제든 충돌할 수 있다. 문제 상황이나 이슈와 관련한 토론 중에 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어떤 의견이든 각자 믿는 가치관과 기준의 미묘한 차이들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이때 큰 방향성을 인지해 모두 소속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배움을 향한 열정이 암묵적으로 공유되고 공감될 때 공동체의 연대는 더욱 견고해진다. 살핀다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사정을 바라보려는 애정과 관심의 마음이다. 상반된 감정 속에서 상대를 위한 선택을 고민하고 감당할 용기가 필요하다. 같은 것만 추구하면 성장하기 어렵다. 다양성을 환영하는 만큼 공동체의 경쟁력도 커진다.

참고

1) 말이란 건 그 사람의 얼굴이야, 개드립 (링크)

2) 책 <아이러니스트>

3) 이미지 출처: 간 떨어지는 동거, tvN (링크)

Written by LAJ